아이고 배야...!!!!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너무 웃긴다. 웃다가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니까 막.
간간히 라디오를 듣게 될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혼자서 엄청 큭큭 거리다가 민망해지곤 했었다.
현장에서 본 아저씨들은 더더 웃겼다. 각종 패러디, 화장실얘기, 특유의 버럭질, 자랑질 등등 풋 ㅋㅋㅋㅋ
그래그래 아저씨들, 열라 웃기고 열라 잘한다 인정!ㅋㅋㅋ 열라 멋있다는... 뭐 그래.. 이..인정한다 치고 ㅋㅋ
확실히, 이런 개그물(?)은 현장에서 마음을 열고 봐야 제맛인듯 싶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깔깔깔 소리내어 웃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이런식이라면 라디오 방청도 한번 가보고 싶다 ㅋㅋㅋ
아, 중간에 연인석 이벤트로 프로포즈를 했는데, 얼레리꼴레리~ㅋ 그치만 조금 민망하긴 해도 매우 감동적일것 같다 ㅎ 아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ㅋㅋㅋ
이래저래 즐거운 하루였다 ㅎ
그런데-
안그래도 요즘 이런 저런 기억들이 몽실몽실 떠올라서 죽겠는데, 하필이면 그 가수 패러디를 할게 뭐람, 허구많은 가수들 중에 하필이면. 휴. 괜히 콘서트 갔던 때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게 됐다! 난몰라-흥
날짜 :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장소 : 고양 아람누리 캐스트 : 정성화, 김선영, 이훈진, 민경언, 한지연, 이계창, 정명은, 이영기, 김현숙, 김호 등
날짜 :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저녁 7시 장소 : 고양 아람누리 캐스트 : 류정한, 김선영, 이훈진, 민경언, 한지연, 이계창, 정명은, 이영기, 김현숙, 김호 등
날짜 :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오후 2시 장소 : 고양 아람누리 캐스트 : 정성화, 이혜경, 이훈진, 민경언, 한지연, 이계창, 정명은, 이영기, 김현숙, 김호 등
또봤다 또. 이번엔 엄마랑도 보고 등등...
하도 보고 들어놨더니 대사도 아주 줄줄 외겠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시작되는 듣는 순간 찌릿찌릿 했다. 기타소리도, 돈 미겔 드 세르반테스가 알론조 키아나가 되면서 부르는 첫곡도 너무나 좋았다. 아무래도 난 이 작품에 뭔가 씌었나봐.
배우들은 대부분 2007, 2008년도 공연 멤버들이었다. 반가운 목소리들이었다. 재미있는건, 작년 재작년 공연때만 해도 조승우 류정하니 더 주목받았었는데, 듣자하니 이제는 정성화 공연이 더 좋다는 얘기도 많단다. 음하하 암, 그렇고 말고..ㅋ 타고난 듯한 산초와, 여관 주인도, 까라스코도, 안토니아도, 이발사도, 모두모두 반가웠다. 예전 신부님도 참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김선영 이혜경씨의 알돈자도 좋지만, 윤공주의 알돈자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윤공주의 공연을 봤을 때 마다 2막의 [알돈자]에서 그녀가 온 에너지를 쏟아냈을때, 온 공연장에서 탄성과 함께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었는데... 그때의 전율을 잊지 못하겠다.
물론, 한두번 대사를 씹기도 하고, 먼저 끼어들어서 다른 사람이 할 대사를 뛰어넘기도 하고, 그럤지만;; 좀더 진행되면 그런 실수쯤이야 없어질테지. “근래에 보기 드문 웰메이드 뮤지컬”, “잃어 버렸던 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가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수백, 수천번들 들어도 가사들을 곰곰히 듣다보면 여전히 용기를 주고 힘을 준다. 아직도 안본 사람이 있다면 꼭 보시길.
날짜 : 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오후 7시 장소 : 아람누리 아람극장 중국 국립중앙발레단
(모든 사진은 홈페이지에서..)
'세계적인' 이라는 호칭은 역시 아무데나 붙는게 아닌가보다. 세계적인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발레 <홍등>, 굉장히 보고 싶었는데 베일을 벗은 작품은 역시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감각적이었다. 예전에 본 영국 국립발레단의 공연도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화려했는데, 그건 의상과 장신구들, 무대장치들 자체가 화려 했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의상같은건 그냥 심플했는데 워낙에 색채들이 강렬하고, 중국 답게 사소한것 부터가 스케일이 아예 달랐다. 근데 같은 동양문화권이라 그런지 (잘 모르지만) 완전히 중국스러웠던 음악이나 경극 등이 더 익숙/친숙하고 그랬다. 발레는 잘 모르지만,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뛰어나고, 몸의 선이나 움직임이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했던것 같다. 장면의 전환은 빠르지만 억지스럽지 않았다. 장예모 감독 연출 답게 무엇보다도 색채가 너무 아름다웠다. 압도하는 붉은색과 천장까지 가득 채우는 홍등, 열정의 빨간색 옷을 입은 셋째부인과 질투의 노란색 옷을 입은 둘째부인 등등.. 더 주저리 주저리 쓰기 보다는 사진 몇장으로 ㅋ
이런장면 참 좋다. 빛만을 이용해 연출한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에서도 그림자를 이용한 장면이 참 좋았는데.
날짜 : 2007년 10월 21일 4시 장소 :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 극장 캐스트 : (변라도) 문성근 최용민 박광정 민복기 신덕호 신영옥 김지영 박지아 오유진 김수정 (변상도) 강신일 정석용 김승욱 서동갑 이성민 이희준 전혜진 공상아 김지현 윤영민
하반기 연극 무대 최고의 화제작. 그 캐스팅만 보아도 눈이 부시다 아주- 저분들을 한무대에서 볼 수 있는게 어디 금방 또 오겠어? 나는 막공, 변라도팀의 공연을 보았다. 하지만 강신일씨도 중간중간 불쑥 나와주시고, 마지막엔 두 팀이 모두 나와 인사했다.
아람누리의 새라새 극장은 어느새 관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이 바뀌어 있었다. 가운데에 커다란 탁자가 있고 그 주위로 빙 둘러앉은 우리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던 말과는 달리, 사실 사투리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못알아들었다는게 아니라, 욕할때만 사투리가 착착 붙는, 왠지 어색한 사투리들.. 그리고 워낙에 서로 떠들며 소리치는 장면이 많아서, 그리고 극의 반쯤은 술에 취한 장면이라, 솔직히 대사를 정확히 다 못알아들었다; '정신없고, 산만한 카오스같은 연극' 이라는 말이 딱이다 아주. 원전을 교묘하게 섞어 넣은 부분부분도 재기발랄하다고 느꼈다. 설렁설렁 대~충 하는 것 같던 배우들도 실은 비굴하고, 단순무식한 각자의 캐릭터가 재미나게 살아 숨셨다.
춘향이는 단 한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변학도가 읊조리는 느끼-한 시속에서 열망과 갈망의 대상이 되던 춘향, 생일날, 술에 거나하게 취한 변학도는 춘향이를 그리워하며 행패를 부린다. 원전에서처럼 자기 일은 데리고 온 생원에게 맡겨버리고 술이나 마시며 폭정을 일삼는 변학도가 "춘향을 짝사랑하는 변학도로의 재해석"이라는 문구가 무색하리만큼 여자만 찾아대는 그가, 원전의 관아에 앉은 사또의 모습이 아니라 헝클어진 양복을 입은 우리시대의 정치인의 모습으로 눈앞에 보이자, 경멸스러웠다. 싫었다.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순간,
너희는 내가 싫지. 하지만 내 앞에서 말하지는 않을거야. 왜냐하면 니들은 영리하니까. 이런데다가 목숨 걸 만큼 바보가 아니니까. 너무 똑똑하니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잊어버린다는 걸 알만큼 영리하니까. 그래서 난 니들이 맘에 든다.
뒤에서는 자기들이 실세라며 대책회의를 벌이지만 정작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던 아전들과 기생들에게 만취한 변학도가 혀꼬부러진 소리로 던진 말이었다. 허헛. 헛웃음이 나왔다.
봤구나.ㅎㅎ 문성근 아저시 버젼으로 본거야? 초콜렛 주는 장면이 정말 웃기지 않든?ㅋㅋ 나 볼 때는 거기 여자 네 명 중에 제일 막내가 정말 대박이었음. 왜이렇게 웃겨.ㅋㅋㅋㅋ 난 사실 보면서 춘향이는 언제 나올까 기대했는데. 조금 보니까 대략 안 나오는 거 같아서 아쉬었음..;
벽을 뚫는 남자는 11월 17일 날 시작해서 내년 2월까지 하네~ . 아직 시작 안 한거다.ㅎㅎ
새라새 극장 자체가, 이런 실험적인 공연을 위한 공연장으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공연장이라고 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제작한 디지털 퍼포먼스. 새라새극장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생소한 것도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참신함과 부족한점들이 동시에 부각된 공연이었다 하겠다. 무대 한가운데 구멍의 오케스트라(?)는 각종 관현악기들 대신에 여러대의 컴퓨터와 모니터들이 놓여있었다. 2040년을 배경으로 하여 첫 씬은 배경에 우주가 투영되는데, 여러 막들을 통해 3차원의 공간으로 느껴지는게 신기했다. 물론.... 예전 CG들처럼 다소 허술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공연장은 스피커가 굉장히 많은것 같았다. 유성이 지는 소리, 별이 반짝이는 소리, 네트워크로 들어가는 소리 등이 머리 위에서 양 옆에서 앞에서 통통 튕기듯 돌아다니는게 실감이났다. (이곳은 여러 구역으로 구분되어 개별 음향을 재생할 수 있는 지향성 스피커들로 이루어져, 같은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서로 다른 음악을 듣게 한다고 한다!!!!) 또, 새라새극장은 가변형 극장이다. 그거랑 관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눈으로는 대충 3D 화면이 보이고, 소리가 꽝꽝 울리면서 의자도 슬쩍 떨려서 아이맥스 영화같은걸 본다면 이거랑 대충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었다.ㅋ
관객 참여도 많았다. 마법사가 갑자기 뛰어내려와서 관객 하나하나를 코앞에서 들여다본다. 난 모자를 쓰고 갔는데, 그 앞에 갑자기 들이대서 깜짝 놀랐네.ㅋ 중간에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주는데 거기로 전화를 걸면 공연장내 네트워크로 접속이 된다. 그럼 앞의 스크린에 있는 퍼즐 조각이 각자에게 배당이 되고, 그걸 핸드폰으로 움직여 맞출수가 있었다! 와우!! 뿐만 아니라, 마법사가 신타지아게이트로 들어가면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과 접속을 한다. 서로 인사를 하고, 그분이 간질간질~ 하면 마법사는 마구 간지러워 하고. 화면속의 분이 보여준 전화번호로 관객중 한사람이 전화를 걸자 통화를 하며 서로 손을 흔들기도 헀다. 이런 하나하나들이 모두 디지털공연인거다. 신기했다.
사실 한시간정도밖에 안하는 공연시간은 너무 짧았고, 어떤 장면인지 미리 제목으로 다 알려주는데도 스토리 연계가 잘 안됐다; 디지털 공연, 참신하고 신기한것도 많았지만, 중간중간 뜨는 느낌도 있었다. 시작할때 구본철교수님께서 난타나 점프같은 공연이 되길 희망한다고 하셨다. 아직은 시작단계니 미흡한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지금껏 없었던 실험정신 또한 돋보였던것 같다. 난타나 점프가 처음에 그러했던것처럼. 다듬다보면 그런 대중적이면서 좋은 공연이 되리라 믿는다.
다은이가 3년전인가, 창극을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며 꼭 봐보라고 했었다. 사실 그때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근데 이번 아람누리 개관기념예술제중에 심청전을 주제로한 창극이 있어서 얼른 달렸다.
먼저, 관련 글보기
청(淸)- 울청, 놀청, 뛸청 -- 창극 <淸>을 보고 禹漢鎔(서울대 교수, 소설가)
창극 <청>의 첫날 공연을 보았다. 전반부는 이전에 보았던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세부사항이 보완된 것은 극 전체의 완결성을 위한 배려가 생각된다. 그런데 후반부는 이제까지 보았던 ‘심청’들과는 상당히 다른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예술에서 반복, 되풀이는 죽음이다. ‘심청’은 이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노래하고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은 판본마다 달라지는 새로움 때문이다. 새로움이라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다. <청>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대와 연출과 창법과 연기가 두루 새롭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술 창조의 과정은 이전 것을 깨뜨리고 새것을 만들어내는 ‘혁명’의 과정이다. 그러나 예술을 수용하고 감상하는 과정은 일종의 길들이기의 과정이다. 길들이되 ‘서로 길들이기’이다. 쌩-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와 여우가 친해지는 과정을 불어 재귀동사를 써서 ‘서로 길들이기; s'apprivoiser'로 규정하는 것은 예술의 수용과 연관지어 생각해도 핵심을 찌른 말이다. 관객은 어느 장르든지 작품을 자주 보아야 익숙해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자주 보고 듣는 것만으로 능사가 아니다. 좋은 작품, 예술적 수준이 있는 작품을 자주 보고 들어야 예술적 감각이 풍성해진다. 아울러 예술의 인식을 명확하게 하고 깊게 하는 데에는 경험의 양적 축적만이 문제가 아니라 감상 대상의 질적 수준이 문제가 된다. 예술적 감수성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공연된 <청>은 창극 관객의 감수성을 이끌어 올리는 데 충분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인의 인생 인식에서 탄생이 죽음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 그것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원형질적인 것이다. ‘청의 탄생’과 모친의 이른 죽음은 이 작품의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하나의 골간이다. <청>은 아이러니를 통한 비극의 초월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무대에서 중점이 놓이는 것은 탄생보다는 죽음을 다스리는 ‘제의’이다. 탄생이 고독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면, 죽음을 다스리는 과정은 ‘제의성’을 지닌다. ‘출생과 장례’라는 제목이 붙은 제1장에서 ‘출상 장면’은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문화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전체 구성 가운데 ‘출상장면’의 비중을 긴장력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맹인의 운명, 아내의 죽음 등 철천지한, 혹은 통한의 피울음을 쏟아놓을 만한 장면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에 ‘더늠’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적 균형감각이 떨어진다면 그러한 효과는 반감된다. 한마디로 이 장면이 과도히 부각된 느낌이다. 철두철미한 비극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질 가운데 하나다. 존재의 괴멸로 이끌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는 소설 작품이 없고 보면, 그것은 우리들 미학의 양질 부분이라 해야 옳다. 그렇다면 비극성보다는 제의상의 다른 요소를 부각하는 방법도 고려함직하다.
아이러니와 함께 드러나는 ‘익살’을 좀 더 살릴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하리라. 시주책에 이름을 올리고 좋아서 그 책을 받아서 거꾸로 돌려들고 읽는다든지, 무대에 냇물로 상정된 마룻장을, 대사가 부채질을 해서 올라오게 하고는 몽은사 부처님의 ‘영검’이라고 눙치는 장면도 익살맞고 재미있다.
청이 물에 빠지는 장면은 명품이다. 통곡과 아수라장같은 훤소와 그 뒤에 이어지는 정적. 그 정적 한가운데를 섬세하게 가로질러 나아가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이들의 절묘한 조합은 극적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제 1막 마지막 장면은 창극의 연출력 측면에서 압권이다. 무대 양편에서 흰구름이 조용히 밀려나와 바닥에 깔리면서 소복을 한 청이 천천히 걸어나와 무대 저편으로 걸어서 소실점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 거기에 하늘에서 내려주는 꽃비. 꽃잎파리가 팔랑거리며 영혼의 마른 잎새처럼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오래 보여주어서는 안 될 비의를 들키기라도 한 듯 급히 막이 내려온다. 환상에 빠져있던 관객들은 조였던 가슴에서 후유 심호흡을 뱉아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제 2막의 마무리에도 변형되어 나타난다. 맹인잔치에서 눈을 뜬 아비 손을 잡고 무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로질러 건너 무태 저편으로 사라지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생의 두 길을 생각하게 된다. 청이가 간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청의 아버지가 걸은 고단한 삶의 길이다. 이 장면에 와서 관객은 <청>을 보는 과정이 자신의 삶의 길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화두를 지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청>을 보는 동안 소리에 압도되어 무대장치나 소도구에 마음쓸 겨를이 없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런 쪽에 매우 섬세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의 아버지는 무자생 쥐띠다. ‘쥐’와 공양미 삼백석의 ‘쌀’의 조응! (과도해석일까), 뺑덕어미와 황성가는 길에 만들어 놓은 장승-길가의 장승 같은 인생, 그리고 무대 왼편에 세운 솟대-맹인의 소망, 등 예사롭지 않은 배치다. 그리고 맹인잔치를 알리는 방도 재미있다. 무대전체를 내리닫이로 압도해 오는 國泰民安 時和年豊 王后慶宴 盲人皆參이라는 방을 휘장으로 꾸민 것이 쉽지 않은 무대감각이다. 심청이 저승에서 옥진부인이 된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 혼을 부르기 위해 ‘씻김굿’ 형식을 빌려오고, 박병천 명인을 직접 등장하게 한 것 또한 연출기량을 돋보이게 하는 국면이다.
<청> 전체를 보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우리 노래에 접하게 된다. 도창을 맡아 하는 안숙선 명창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다. 거기다가 출상장면의 향두가, 남경선인들의 뱃노래, 청이 왕비로 간택된 후 ‘박’을 두드리면서 추는 춤에 더불어 부르는 화초가, 맹인들이 황성 맹인 잔치에 가다가 쉬는 동안에 부르는 경상도 밀양 아리랑, 전라도 진도 아리랑, 제주 오돌또기, 경기 창부타령, 그리고 각설이타령 등 푸짐한 노래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를 통해 소리꾼들의 솜씨를 보는 재미도 재미어니와, 함께 판에 어울릴 수 있다는 참예(參預)와 동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서양의 오페라를 떠올리게 된다. 오페라에서 어느 장면에서 따내어 독립된 노래를 부르는 ‘아리아’를, 창극에서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춘향가>의 ‘사랑타령, <흥부가>의 ’돈타령‘ 그런 것들처럼 창극이 공연되면 그 창극의 얼굴에 해당하는 노래를 만들고 널리 보급하여 누구라도 부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인 판소리가 이제 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판에 그 부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식은 죽 갓 둘러 먹기’ 아니겠는가.
<청>의 철학, 삶과 죽음, 슬픔을 희망으로 전환하는 예술 구도, 희생과 구원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자 한다. 다만 창극 <청>이 여러 버전으로 ‘새끼치기’(장르분화)를 해서 <청>그룹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활력이 넘친다. 전반부가 좀 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원본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 도전하는 것이 예술 아니던가. 과감한 상상력의 마름질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청>을 처절한 비극으로 구성하여 울음으로, 통곡으로 이어지는 창극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 최고의 비극으로 부상할 수 있을 터. 상여놀이, 맹인들의 노래자랑 등처럼 놀이판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짤 수도 있지 않겠나. 놀이판에서 관객들이 같이 어울려 흥을 돋구는 그런 창극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소리는 최소화하고 춤을 중심으로 변형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무 속에 녹아나는 슬픔을 관객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름하여 ‘울청’, ‘놀청’, ‘뛸청’ 그런 식으로 새끼치기를 해야 창극이 살아난다.
자식없는 창극이 오래가자면 자식을 자주 낳아야한다. 말썽도 부리고 부모(판소리) 복장 뒤집는 짓도 하리라. 그러나 대를 이어가자면 그래야 한다. 자식들이 부잡스러워 당하는 수모는 받아드릴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새끼치기를 하다보면 소설 <심청전>, 판소리 <심청가> 등의 정전(正典)을 훼손하는 불손한 짓이라 핀잔을 하는 이가 있으리라. 그러나 정전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서양문자로 장난삼아 말하자면 정전(canon)은 대포(cannon)이다. 깨고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야 새로운 가통이 선다. 가난한 <청>이 가멸은 <청>으로 환생하는 길에 노자를 보태는 데 진땅 마른 땅 가릴 일이 아니다.
역시, 난 창극은 처음이라 창이 어떤건지 어떤것을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체 갔다. 그러니까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내 맘대로인것!ㅋㅋ
극은 청이의 탄생과 어머니 곽씨부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곽씨부인의 장례 장면이 곧바로 이어지는데 앞장선 상두꾼 할아버지의 창이 매우 구성지게 들렸다. 청이가 인당수 제수로 팔려가는 장면과 물에 뛰어드는 장면, 다시 심봉사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너나할것 없이 울었는듯 싶다-
7.5도 기울인 회전무대가 돌아가는 무대와 그를 이용한 연출은 극을 훨씬 더 인상깊에 만들어 준것 같다. 천장까지 반사되는 조명들은 바다의 느낌을 실감나게 내주기도 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앞에서부터 양 옆으로, 뒤까지 왔다갔다 하던 스테레오 음향도 그러하고. 심봉사가 물에 빠지는 장면에선 무대 가운데가 불쑥 들어갔다가 언제 그랬냔듯 돌아오고, 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드는 장면에서의 귀가 터질 듯한 음악과 번개를 표현한 조명은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청이의 간청으로 맹인잔치를 여는 칙령이 내려질때 무대 한가득 방이 펼쳐지며 눈을 압도하고,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에선 갑자기 무대가 확 밝아지는 연출도 감각적이었다.
창극의 대중화와 정형화를 위한 극이라는 설명답게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기 위한 면도 많이 보였다. 황사가 심하니 얼른 떠나자는 심봉사의 말도 그러하고 "짜증 지대로다~" 하던 한 봉사의 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웃었다. 황성가는길 봉사들의 장기자랑 장면도 재미있었다. 온갖 사투리와 각 지방의 아리랑 그리고 함께 들썩이며 흥겹게 부른 각설이 타령...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겠지만, 빽덕어멈 같은 캐릭터는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이다.
서양 악기들과 국악기의 하모니도 너무 좋았다.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반복되면서, 차분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음악. 우리네 한(恨)의 정서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극에는 우리말 자막과 함께 영어 자막이 동시에 제공되었다. 창이란게 우리 전통적인 것이라, 옷갖 은유와 비유와 예시와 상징들이 섞여있었는데, 영어자막을 보니 정말 직설적이더라. 극을 보는 내내 우리 창극과 우리 전통 악기를 사용한 공연이고, 간단하게지만 궁중 의식 장면도 나오고 해서 외국인들이 보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그들이 보아도 그런 메타포와 정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것이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안숙선 명창이 도창을 맡으셨는데, 그분의 창을 직접 들은 것도 영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서 인지, 창극이라서인지, 할머니할아버지들부터, 꼬맹이 아이들까지, 가족들끼리 보러온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내 옆자리서 보던 7,8살쯤 돼 보이는 꼬마 아가씨는, 얼마나 집중해서 보던지. 3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몸한번 뒤틀지 않고, 가슴아픈 장면에서는 울기까지 하면서 보는데, 너무 예뻤다 ^^
극이 담고 있는 정서가 느껴지고 이해되는것을 보니 나도 어쩔수 없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의 대본을 사용한 뮤지컬들을 볼때 느낀 재미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앞으로 창극에도 푹 빠지지 않을까 싶다-ㅋ
댓글을 달아 주세요